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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反 간첩법 “간첩 정황만으로 처벌 가능" 관광 · 기업 활동 위축, 종교 활동 간첩 몰릴 수도(국민문화신문) 금일부터 적용되는 “중국 反 간첩법”이 모호해진 간첩행위, 넓어진 적용 범위, 강화된 조사. 처벌 등으로 혐의가 입증 안돼도 처벌 가능해져 우리나라와는 제도·개념 등의 차이로 예상치 못한 피해가 생길 수 있어 주재원· 관광객 등 중국에 체류하고 있거나 방문 예정인 우리 국민들은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고 주중 한국 대사관이 발표했다. 금일부터 시행되는 '반 간첩법'은 기존 법이 국가의 기밀 정보에 관련한 간첩 행위에 한정됐지만, 이번 개정 법은 중국의 국가 안전과 이익에 관한 문건이 포함된다. 중국 관련 비판 기사를 검색하거나 저장하는 경우에도 간첩으로 몰릴 수 있다는 의미로 외국인도 예외 없이 법 적용이 가능하다고 알려졌다. 2014년 이후 9년 만에 개정한 법안은 종전 5장(章) 40조 항에서 6장 71조 항으로 늘었다. 핵심은 간첩 행위 적용 대상을 ‘국가 기밀·정보를 빼돌리는 행위’에서 ‘국가 안보·이익과 관련된 자료 제공’ ‘간첩 조직에 의지[投靠]하는 행위’ 등으로 크게 확대한 것이다. 법 규정이 모호하기 때문에 주요 국가 기관, 군사 시설이나 시위 장면 등을 촬영했다가 ‘간첩 행위’로 몰릴 위험도 있다. 개정된 주요 내용은 간첩행위의 정의 확대 기밀 정보 및 국가 안보와 이익에 관한 문건·데이터 등에 대한 정탐 취득·매수·불법 제공을 간첩행위에 추가, 국가기관·기밀 관련 부처·핵심 정보 기반 시설 등에 대한 촬영, 사이버 공격, 그리고 간첩조직 및 그 대리인에게 협력하는 행위도 간첩행위에 추가 법 적용 범위 확대 간첩조직 등이 중국의 국민·조직 또는 기타 조건을 활용해 시행하는 제3국을 겨냥한 간첩 활동이 중국의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경우에도 동 법의 적용 가능 국가 안보기관의 권한 확대 간첩행위 혐의자의 문서 데이터 자료·물품의 열람 및 수거 권한과 신체 물품 장소 검사의 권한 명시, 관련된 개인과 조직에 대해서는 협조 의무 부여 간첩행위에 대한 행정처분 강화 간첩행위를 하였으나 간첩죄가 성립되지 않는 경우에도 행정구류 등 처분 가능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활동을 할 가능성이 있는 외국인에 대한 입국 불허 가능동 법 위반 외국인에 대한 추방 및 10년 이내 입국 금지 가능 주 중 한국 대사관은 26일 "중국 국가 안보 및 이익과 관련된 자료, 지도, 사진, 통계자료 등을 인터넷에서 검색하거나 스마트폰·노트북 등 전자기기에 저장하는 행위, 군사시설·주요 국가기관·방산업체 등 보안 통제구역 인접 지역에서의 촬영 행위, 시위 현장 방문과 시위대 직접 촬영 행위, 중국인에 대한 포교, 야외 선교 등 중국 정부에서 금지하고 있는 종교 활동 등에 유의하라"라고 공지했다. 금일 시행되는 개정 반 간첩법은 전문 스파이들의 세계에서나 존재하는 것으로 여겨져 온 간첩 행위를 일반 중국 국민, 중국과 관련된 외국인의 일상생활과 무관치 않은 이슈로 만들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예상치 못한 문제 발생 시 중국 지역 대한민국 재외공관 연락처 및 관할 지역 연락처 자료출처 : 외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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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첩 혐의' 충북동지회, 北에 야단맞고 자중지란도국가정보원과 경찰이 간첩 혐의로 '자주통일 충북동지회' 조직원들을 수사 중인 가운데 북한 지령을 받은 이들의 활동 성과가 저조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10일 연합뉴스 취재에 따르면 국정원과 경찰청 안보수사국은 충북동지회 고문 박모(57·구속)씨가 2004년 북한 대남공작 부서인 통일전선부 문화교류국(옛 225국)에 포섭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어 위원장 손모(47·불구속)씨, 부위원장 윤모(50·구속)씨, 연락 담당 박모(50·구속)씨가 차례로 간첩 활동(국가보안법 위반)을 벌였다. 수사당국이 올해 5월 이들의 자택 등을 압수수색해 확보한 이동식저장장치(USB)에는 피의자들과 북한 공작원이 2017년부터 주고받은 지령문과 보고문 84건이 암호화 파일 형태로 저장돼 있다. 이들은 북측으로부터 충북 지역 정치인과 노동·시민단체 인사 60여 명을 포섭해 친북·반미·반보수 활동을 벌이라는 지령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충북동지회는 2018년부터 민중당(현 진보당) 충북도당 간부인 A씨의 신원 자료와 사상 동향, 포섭 방법을 수집해 보고하라는 지령을 받았다. 수개월에 걸쳐 북측의 재촉을 받고 2019년 7월 A씨에 관한 자료를 발신했지만, 그 내용에 실망한 북측은 충북동지회를 질책한 것으로 전해졌다. 북측은 "어떤 방법으로 포섭하겠는가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지 못했다"며 "속을 터놓을 수 있는 가까운 친구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우선시돼야 한다"고 구체적인 방법까지 일러줬다. 이들은 지난해 5월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당분간은 사업하기 어려워 장기적인 대상으로 미룬다"며 A씨를 대신해 충북동지회 고문인 박씨 아들을 끌어들여 보겠다고 보고했다. 이들은 또 21대 총선을 앞둔 작년 3월 북한 지령을 받고 청주 지역 더불어민주당 간부를 면담했다. 이 자리에서 충북동지회는 'F-35A 도입 반대', '국가보안법 철폐', '주한미군 철수' 등의 의제화를 요청했으나 민주당 인사는 난색을 보였다. 이에 북한은 작년 6월 "능력을 고려함이 없이 주관적인 욕망만을 앞세우면서 과도한 목표를 제시하는가 하면 중심이 없이 여러가지 사업을 벌여놓다 보니 형식보다 결실을 내지 못하고 있다"고 꾸짖었다. 피의자들은 2019년 11월 중국 선양에서 북측으로부터 2만달러의 활동자금을 받았다. 북한 공작원이 무인함에 놓고 간 돈을 연락담당 박씨가 찾아가는 방식이었다. 이후 윤씨는 올해 3월 4일 '박씨가 활동자금 중 1만달러를 유용·횡령했다'고 비난하는 내용의 보고문을 북측에 보냈다. 이에 북측은 일주일 뒤 '1만달러를 자의대로 처리하게 된 동기와 원인을 상세히 보고하라'는 지령을 하달했다. 영장 청구서에는 조직원 중 1명이 충북동지회를 탈퇴하려 하자 다른 조직원이 '북한에 보고하겠다'고 사실상 협박했다는 내용도 담겼다. 손씨가 대표를 맡은 지역신문도 정작 지역에서는 언론이 아닌 개인 블로그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는 것으로 전해졌다. 구속을 피한 손씨는 강제수사가 시작돼 대북 보고가 불가능해지자 이 매체를 통해 수사 상황을 간접적으로 보고한 것으로 국정원과 경찰은 파악하고 있다. 수사당국 관계자는 이들에 대해 "국내 정치권과 시민단체의 내부 동향을 북한에 보고한 것만으로도 국가안보에 위해를 가했다고 판단된다"며 "포섭이 성공적으로 이뤄졌는지도 수사 중"이라고 말했다. 이달 2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받는 충북동지회 조직원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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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박물관, 《기억의 바다로: 도미야마 다에코의 세계》 6월 30일까지 개최2019년 1월 9일에 촬영한 도미야마 다에코 작가의 모습. 사진 제공: 연세대학교 박물관 (국민문화신문) 정예원 기자= 연세대학교 박물관(관장 조태섭)은 2021년 3월 새 학기 첫 기획전으로 《기억의 바다로: 도미야마 다에코의 세계》를 3월 12일부터 6월 30일까지 박물관 1층 전시실에서 개최한다. 광주 민주 항쟁, 종군 위안부, 징용노동자와 같은 일제와 군사독재정권의 만행을 그려온 일본의 실천 주의 화가 ‘도미야마 다에코’의 기획전이 연세대학교 박물관 1층 전시실에서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도쿄대학 동양문화연구소와 공동으로 준비한 전시이다. 인류 보편적인 인권, 반전, 평화를 위해 격랑의 100년을 살아오며 세계의 현실을 응시하고 예술작품으로 증언해온 일본화가 도미야마 다에코의 작품세계를 만날 수 있는 전시이다. 드로잉, 유화, 판화, 영상 작업 등 1950년대부터 제작한 작품 170여 점을 선보인다. 2021년 3월 5일에 촬영한 도미야마 다에코 작가의 모습. 사진 제공: 연세대학교 박물관 도미야마 다에코는 1921년 일본 고베에서 태어나 올해 만 100세가 되는 현역 화가이다. 그녀는 1933년 12세에 만주 지역으로 이주하여 청소년 시기를 보내며 조선, 중국, 러시아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일본의 제국주의와 군국주의에 동화되지 않는 예리한 감수성을 가지게 되었다. 이때의 경험은 도미야마가 화가로서 사회 참여적인 작품을 그리도록 이끌었다. 작가는 생애를 통해 소외되거나 배제된 낮은 목소리를 채굴하고 증폭하는 일에 매진했다. 그 시작은 석유 시대로 전환될 무렵의 1950년대 탄광 사람들의 기록이었다. 한국의 6.25 전쟁으로 인한 석탄 호황도 끝나가고 안전사고 등으로 광산 폐쇄가 이어지자 일부 광부들은 브라질로 일자리를 찾아 이민을 떠난다. 작가는 이들을 따라 찾은 라틴아메리카 전역에서 일어나는 저항 정신 가득한 제3 세계 예술운동을 접한다. 이후 그는 군사독재정권과 대치하고 있는 아시아 각국 상황에 시선을 돌리게 되며 한국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리하여 1970년대에 도미야마는 한국의 지식인들이나 재일조선인 유학생들이 군사정권에 의해 정치범이나 간첩으로 몰리는 사건에 관심을 가지고, 정치범들을 그려 그들의 존재를 국제적으로 알리는 일을 병행했다. 이번 전시는 제국주의 백 년을 관통하며 세계 곳곳의 낮은 목소리들을 시각 이미지로 제작해 온 도미야마 다에코의 증언을 5개의 주제를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작가는 전쟁의 시대 20세기 곳곳에서 벌어진 사건의 증언을 통해 고난을 감당하고 받아내며 견딘다는 것의 힘을 전하려고 한다. <찢긴자들> 시리즈를 통해 강제동원 되어 가혹한 노동을 당한 조선인 노동자의 삶을 담아내고, <바다의 기억> 시리즈를 통해 위안부 여성들의 '한'을 해원 하고자 하였다. 도미야마 다에코 작가의 벽 안의 원한. 사진 제공: 연세대학교 박물관 <찢긴자들> 시리즈 중 특히, 작품 ‘벽안의 원한-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한 윤동주에게 바치다’를 통해서 일본의 억압과 폭력에 의해 조국의 해방을 보지 못하고 쓸쓸하게 옥사한 윤동주의 아픔을 그려냈다. 윤동주가 갇힌 후쿠오카 형무소를 그리면서 이를 윤동주에게 바치는 작품으로 명명하였다. 도미야마 다에코 작가의 남태평양의 해저에서. 사진제공: 연세대학교 박물관 <바다의 기억> 연작 중 ‘남태평양의 해저에서’ 작품에서는 무당을 등장시켜 태평양 바다 아래 잠긴 ‘위안부’ 여성의 ‘한’의 목소리를 듣는 형식으로 그 슬픔을 이야기하고 있다. 도미야마 다에코 작가의 광주의 피에타. 사진제공: 연세대학교 박물관 1980년 5월 항쟁 당시, 도쿄에 있던 도미야마는 광주의 소식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한 달 동안 집중적으로 일제강점기 한반도에서 강제 연행되어 노동을 강요당한 조선인 광부들의 억울한 죽음과 발리섬에 남겨진 일본군 ‘위안부’들의 넋을 위로하는 작품들을 그렸다. 이렇게 제작된 작품은 시민들의 손으로 기획된 순회전이나 집회장, 해외의 대학과 교회 등에서 주로 전시되었고 한국의 문화나 상황을 모르는 사람도 심리적으로 이해하기 쉬운 ‘미디어 예술’로서도 역할했다. 나아가 90년도에는 고도성장으로 버블경제에 취해 있는 일본과 그런 일본에 일하러 온 태국 여성들의 안타까운 이야기를 작품 속에서 다루었고, 패전 50주년이 되는 1995년 무렵에는 괴뢰국 만주의 역사를 그린 작품들을 발표했다. 이렇게 아시아에 대한 일본의 책임을 묻는 여러 작품을 그려왔음에도 불구하고 도미야마의 작품은 일본의 화단에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한편 한국에서도 ‘정식으로’ 작품이 소개된 것은 1995년이 되어서이다. 그전까지는 정치범을 면회한다는 이유로, 군사정권의 ‘블랙리스트’에 올라 한국 입국이 거부되었을 뿐만 아니라, 도미야마의 저서 『해방의 미학』 또한 판금 조치를 당했다. 다행히 광주시립미술관 하정웅 컬렉션에 도미야마의 광주 연작이 포함되어, 최근 광주를 중심으로 작품 전시가 이루어졌다. 이번 연세 대학교 박물관에서 열리는 전시에서는 작가의 전 생애에 걸친 다양한 주제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만나는 기회를 가지게 된다. 이번 전시에 대해 김도형 동북아역사재단 전 이사장은 “코로나 19로 한층 단절된 한일 관계속에서 미술작품을 통한 문화교류는 끊어진 인적 교류를 넘어서는 획기적인 기회이다. 도미야마 작가가 예술을 통해 외치고 있는 인권, 평화의 이념은 한일 간 역사적 과제까지 뛰어 넘을 수 있는 길잡이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백영서 연세대 명예교수는 “청일전쟁부터 이어지는 동아시아 근현대사의 모순의 응집과 그로부터 연유한 고통의 기억, 그를 넘어서는 연대(連帶)의 정동(affection)을 형상화한 예술세계를 이 시대의 ‘듣는 역사’의 귀감으로 삼고 싶다” 라고 전했다. 광복 50년을 맞이한 1995년, 도미야마 다에코 작가의 개인전을 한국에서 처음 기획하고 개최했던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은 “1980년대 도쿄에서 작가의 작품을 처음 만났을 때의 가슴 뭉클함을 다시 기억한다. 일제 강점기 식민지 시대에 대한 사죄의 마음을 담은 작품을 서울에서 만난지 4반세기 만에 다시 마주하게 된다.” 라며 개인전에 대한 기대심을 표했다. 한편, 전시와 연계해서 열리는 학술대회는 3월 12일 13시부터 열였다. 여성운동가, 민주화 운동가로 1995년 일본에서 한국의 민주화 운동을 지원하던 단체의 세미나에서 인연을 맺은 도미야마 다에코 작가와 오랜 친분을 이어오고 있는 한명숙 전 국무총리와 1970년대 미술사 분야에서 영어권 국가에 제일 먼저 도미야마 작가를 알린 하기와라 히로코(오사카부립대학) 명예교수가 기조강연을 했다. 논문 발표는 연세대학교 신지영 교수가 ‘도미야마 다에코의 ‘미술운동’이라는 현재적 공명판 - 1950년대와 1980년대 강제노동(탄광) 및 위안부 관련 작품, 다큐, 글을 중심으로, 리츠메이칸대학 코리아연구센터 서윤아 객원 연구원이 도미야마 다에코가 모색한 ‘새로운 예술’이란 무엇인가: 패전 후부터 1960년대까지를 중심으로,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다카하시 아즈사 전문연구원이 도미야마가 만난 김지하, 돗쿄대학 다카기와 유아 강사가 ‘도미야마 다에코에 있어서 라틴아메리카 경험’에 대해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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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날아라 개천용, 개천용들의 정의 구현 역전극은 현재 진행형SBS 금토드라마 ‘날아라 개천용. 사진제공:스튜디오앤뉴 (국민문화신문) 유한나 기자=SBS 금토드라마 ‘날아라 개천용’(연출 곽정환, 극본 박상규, 기획&제작 스튜디오앤뉴, 투자 Wavve)이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최종회 시청률은 6.8%(2부, 닐슨코리아 수도권 기준)를 기록, 순간 최고 시청률이 7.3%까지 치솟으며 뜨거운 호평 속에 유종의 미를 거뒀다. 이날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만들기 위한 개천용들의 고군분투는 불합리한 세상에 변화를 일으켰다. 눈앞의 돈과 권력, 명예보다 소외되고 차별받으며 살아가는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했던 박태용(권상우 분)과 박삼수(정우성 분). 수많은 위기와 좌절 속에서도 정의구현을 멈추지 않았던 두 개천용은 새로운 재심 사건으로 다시 손을 맞잡았다.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을 알린 두 사람의 모습은 ‘날아라 개천용’다운 뭉클하고 뜨거운 엔딩을 선사했다. 권력보다도 값진 정의를 찾아 나섰던 두 개천용은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을 알리며 오래도록 곱씹을 울림을 남겼다. 이에 모두의 가슴을 뜨겁게 달궜던 ‘날아라 개천용’이 남긴 것을 짚어봤다. 따뜻한 시선으로 날카롭게 짚어냈다! 부조리한 현실에 던진 묵직한 화두 ‘날아라 개천용’은 날카롭게 현실을 조명하며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삼정시 3인조 사건, 오성시 살인사건, 제주도 간첩 사건의 재심을 통해 바라본 부조리한 현실은 씁쓸했다. 억울한 누명을 썼던 이들은 모두 사회에서 소외된 약자들이었고, 각자의 이해관계로 얽혀 진실을 알고도 은폐했던 기득권층의 모습은 뼈아픈 현실을 비춰냈다. 재심 재판에 승소하고도 잘못된 수사와 오판을 한 이들의 죗값은 없었고, 책임을 묻지도 않았다. 그러나 개천용들은 멈추지 않았다. 숱한 위기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나아간 이들은 강압 수사, 재판거래, 채용 비리 등을 파헤치며 불합리한 현실의 이면을 드러냈고, 뿌리 깊은 적폐를 뽑아내며 묵직한 화두를 던졌다. 권력 앞에서 묵인된 진실들은 ‘진정성’과 ‘작은 용기’를 시작으로 변화를 가져왔다.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없기에 하소연조차 할 수 없었던 이들은 박태용과 박삼수를 통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기본조차 지켜지지 않는 현실 속에서 정당한 권리를 되찾아 나갔다. “정의가 돈이 되는 세상을 위해 뛰어봅시다”라는 당찬 포부처럼, 박태용과 박삼수의 정의구현 역전극은 마지막까지 뜨거운 엔딩을 선사했다. 씁쓸한 현실을 따뜻한 시선으로 풀어나간 두 개천용의 정의구현 역전극은 우리들의 삶 어딘가에서 포기하지 않고 꿈틀대는 작은 힘이 세상을 바꿔나갈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며 뭉클한 감동을 안겼다. 진정성으로 일군 변화,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전하는 따뜻한 위로 개천용들이 맞닥뜨린 재심 사건들은 ‘돈이 정의’가 되는 안타까운 현실을 투영했다. 모두가 무모한 일이라 비웃었던 재심 재판은 돈과 권력이 아닌 ‘진정성’으로 기적을 이뤄냈다. 삼정시 3인조가 무죄를 선고받을 수 있었던 이유도 진범의 마음을 움직인 박태용과 박삼수의 진정성이 있었기 때문. 그 덕분에 오랜 시간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안고 살아가던 이들은 아픔을 딛고 일어설 수 있었다. 강압 수사로 거짓 자백을 한 오성시 살인사건의 피고인 역시 마찬가지였다. 살인자라고 낙인찍혀 평생을 힘겹게 살아온 그의 팍팍한 삶과 상처는 돈으로 보상받을 수 있는 시간이 아니었다. 진실을 은폐하려는 자들의 숱한 방해와 외압에도 판사의 마음을 돌릴 수 있었던 이유 역시 그의 마음 어딘가에 남아있는 정의의 불씨를 살린 박태용의 일침 때문이었다. 사회적 약자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박태용과 박삼수의 시선은 피해자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세상에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용기를 심어 줬다. 이들에겐 그 어떤 금전적인 보상보다도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말 한마디가 큰 위로가 됐다. “침묵했던 사람들이 진실을 말하고, 힘을 합치면 세상이 어떻게 달라지는 보여드릴게요”라는 박삼수의 말처럼, 두 개천용의 무모한 열정이 만들어낸 변화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순간을 선물했다. 권상우X정우성X김주현부터 정웅인X김응수X조성하X김갑수까지 공감의 깊이 더한 배우들의 뜨거운 열연 배우들의 열연은 공감의 깊이를 더했다. 무모하리만치 열정적인 박태용을 진정성 있게 그려낸 권상우는 매회 시청자를 웃기고 울리며 공감을 견인했고, 유쾌하면서도 인간미 넘치는 박삼수를 노련하게 그려낸 정우성은 호평을 이끌어냈다. 강단 있는 이유경으로 분해 정의구현 역전극에 힘을 더한 김주현과 미워할 수 없는 ‘빌런’ 장윤석으로 ‘악역 제조기’라는 명성을 입증한 정웅인의 열연도 빛났다. 여기에 극적 긴장감을 조율한 엘리트 집단 김응수, 조성하, 김갑수, 박지일의 활약도 대단했다. 이 밖에도 안시하, 이원종, 이순원, 김혜화 등 캐릭터의 맛을 살리는 배우들의 현실적인 연기는 리얼리티를 더했다. 무엇보다 에피소드의 중심이 되는 재심 사건의 피고인으로 분해 그들의 아픔과 상처를 녹여냈던 윤주빈, 하경, 정희민, 지태양 역시 공감의 깊이를 더한 일등공신이다. 마지막까지 부조리한 현실의 이면을 날카롭게 짚어낸 ‘날아라 개천용’은 돈과 야망, 명예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깊이 새겼다. 권력 앞에서 묵인된 진실들은 작은 용기를 시작으로 봇물 터지듯 흘러나왔다.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없기에 하소연조차 할 수 없었던 이들은 박태용과 박삼수를 통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기본조차 지켜지지 않는 현실 속에서 정당한 권리를 되찾아 나갔다. “정의가 돈이 되는 세상을 위해 뛰어봅시다”라는 당찬 포부처럼, 박태용과 박삼수의 정의구현 역전극은 마지막까지 뜨거운 엔딩을 선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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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가 윤이상 일대기 그린 연극 '상처 입은 용'경기도립극단, 내달 7∼9일 경기도문화의전당서 공연 경기도립극단은 올해 작곡가 윤이상(1917~1995) 탄생 100주기를 맞아 내달 7∼9일 경기도문화의전당에서 그의 일대기를 다룬 연극 '윤이상: 상처 입은 용'을 선보인다고 30일 밝혔다. 작곡가 윤이상 [연합뉴스 자료사진]이번 공연은 그의 출생 일화를 모태로 한다. 윤이상의 어머니는 태몽으로 용을 꾼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용은 지리산 상공을 휘돌고 있었는데, 몸에 상처가 있어 하늘 높이 날지는 못했다고 한다. 실제 굴곡진 한국 근현대사와 궤를 같이한 윤이상의 삶은 '상처 입은 용'과 닮았다. 윤이상은 1960년대 독일 유학생 시절에 북한에 있는 강서고분의 '사신도'를 직접 보겠다며 방북했다가 간첩으로 몰려 기소되면서 국내에서 줄곧 이념 논란에 시달렸다. 그러나 국외에서는 '동양과 서양의 음악기법 및 사상을 융합시킨 세계적 현대 음악가', '20세기 중요 작고가 56인', '유럽의 현존 5대 작곡가'로 불리며 음악성을 인정받았다. 경기도립극단은 무대에서 17세, 21세, 29세, 35세, 47세, 50세 연령대별로 각기 다른 윤이상을 등장시켜 그의 삶에서 중요했던 순간들을 재연한다. 배우들은 격동의 역사의 곁에서 고뇌하는 예술가 윤이상의 모습을 보여줄 예정이다.이번 공연 총연출은 연극 '우리의 여자들', '봄날의 후리지아처럼' 등을 연출한 이대웅 연출가가, 예술감독은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의 개폐회식 총연출을 맡은 양정웅 연출가가 맡았다. 연극 '윤이상: 상처 입은 용'에 출연하는 배우들. [경기도립극단 제공 = 연합뉴스]극본은 연극 '가족오락관', '바람직한 청소년'의 이오진 작가가 썼다. 이 작가는 "한국 근현대사 내내 오해받았던 윤이상의 삶과 음악을 무대 위에서 투명하게 소개하고 싶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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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향엔 닿지 못했지만"…통영바다를 물들인 윤이상의 '첼로'통영국제음악제 개막 공연…윤이상·베토벤 연주로 화합 메시지 전해 2017 통영국제음악제'2017 통영국제음악제' 개막 공연에서 첼리스트 니콜라스 알트슈태트와 슈테펀 숄테스가 이끈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가 윤이상의 첼로 협주곡을 연주하는 모습. 2017.03.31 [사진제공=통영국제음악재단]지난달 31일 경남 통영국제음악당 무대 위에 오른 오케스트라 배열에서는 특이하게도 첼로가 빠져있었다. 첼로는 협연자(첼리스트 니콜라스 알트슈태트)의 솔로 악기로 한 대만 등장했다.무대 위에서 이 첼로는 홀로 오케스트라에 맞서 외롭게 싸우는 모습으로 묘사됐다.이날 연주된 곡은 통영 출신 세계적 작곡가 윤이상(1917~1995)의 대표작 중 하나로 평가받는 첼로 협주곡. 그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2017 통영국제음악제'의 개막 공연 작품으로 선정됐다.이 첼로 협주곡은 윤이상의 자전적 이야기를 첼로의 '독백'에 담아낸 작품으로 잘 알려졌다.윤이상은 1967년 동백림(동베를린) 간첩단 사건에 연루된 이후 국내에선 줄곧 이념 논란에 시달려왔지만, 나라 밖에서는 동·서양의 음악기법과 사상을 융합시킨 세계적인 현대음악가로 평가받는다.이번에 연주된 첼로 협주곡에도 그의 삶과 독특한 작곡 기법이 고스란히 담겼다.첼로를 든 알트슈태트와 슈테펀 숄테스가 이끄는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가 무대 위에 오르자 1천300석을 꽉 채운 통영국제음악당 콘서트홀 객석은 숨을 죽였다. 단(單)악장으로 구성된 이 작품에서 첼로와 오케스트라는 어우러지기를 포기한 채 갈등과 대립을 지속하며 독특한 에너지를 발산했다. 특히 첼로는 한국 전통 악기인 거문고나 가야금 소리처럼 퉁기는 소리를 내며 오케스트라와 이질적인 색채를 빚어냈다.첼로는 오케스트라의 선율 사이 사이에서 절뚝절뚝 걷는 모습으로, 안개 낀 통영 바다 위를 헤치고 나아가는 배처럼 묘사되기도 했다. 동양과 서양, 남한과 북한 그 어느 곳에도 온전히 수용되지 못한 '경계인'으로 살다 간 윤이상의 삶이 낯설면서도 매혹적인 첼로 선율로 펼쳐졌다.말미에 이르러 첼로는 유토피아를 향한 처절한 사투를 벌이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이상적 세계를 상징하는 '라'(A) 음에 닿기 위해 첼로는 부단히 노력하지만, 결국 그 아래인 '솔#'(G#) 음에서 생명을 다한다. 객석은 낯설면서도 독특한 에너지로 가득한 이 곡이 끝나자 큰 박수로 화답했다. 공연을 마치고서 만난 알트슈태트는 "이 협주곡에는 자유와 순수에 대한 갈망이 담겨 있다"며 "필사적이고 처절하게 이상향을 찾고 싶어 했던 윤이상 선생의 모습이 첼로 선율로 형상화됐다"고 해석했다.윤이상의 곡 뒤에는 자유와 화합, 인류애를 담은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이 연주됐다. 그 유명한 합창 선율이 통영 밤바다 위에 그 어느 때보다 또렷하게 울려 퍼졌다. "가혹한 현실이 갈라놓았던 자들을 신비로운 그대의 힘으로 결합하도다. 그리고 모든 인간은 형제가 되노라."통영국제음악제는 4월 9일까지 이어진다. 2017 통영국제음악제'2017 통영국제음악제' 개막 공연에 울려퍼진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2017.03.31 [사진제공=통영국제음악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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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스오피스> '럭키' 개봉 4일째 200만 명 돌파(서울=연합뉴스) 조재영 기자 = 영화 '럭키'가 주말 극장가를 휩쓸었다.17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 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럭키'는 개봉 4일째인 13일 200만 명을 넘어섰다.역대 코미디 장르 가운데 최단 기간에 200만 명을 돌파했다. 이달 13일 개봉과 동시에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른 '럭키'는 오랜만에 나온 코미디 영화인 데다 주연 배우 유해진의 호연이 더해져 관객들의 호평을 받고 있다. 영화 '럭키' 포스터[쇼박스 제공] '럭키'의 공세 속에 외화들도 순위 다툼을 하며 꾸준히 관객 수를 늘려가는 중이다. 팀 버튼 감독의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은 2위로, 누적 관객 수는 249만1천722명이다.공포영화 '맨 인 더 다크'와 액션영화 '바스티유 데이', 로맨틱 코미디 '브리짓 존스의 베이비'는 각각 3∼5위에 랭크됐다.벤 애플렉 주연의 '어카운턴트'는 6위에 머물렀다. 벤 애플렉의 인기에 힘입어 북미에서는 지난 주말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른 것과는 대조적이다. '어카운턴트'는 악당들의 뒤를 봐주던 천재 회계사가 범죄조직과 국가의 표적이 되면서 반격을 시작하는 내용의 액션영화다. 다큐멘터리 영화 '자백'은 흥행 순위 7위에 올랐다. 주말 이틀 동안 2만명 이상이 이 영화를 봤으며 누적 관객수는 5만8천244명으로, 다큐멘터리 영화치고는 상당히 선전 중이다. '자백'은 2012년 탈북한 화교 출신의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씨가 국원에 의해 간첩으로 내몰린 사건을 다룬 작품으로, '뉴스타파'의 최승호 PD가 메가폰을 잡았다.김성수 감독의 '아수라'와 톰 행크스 주연의 '설리:허드슨 강의 기적'은 각각 8위와 9위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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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성석제 "돌 맞아 우는 약자들 이야기 썼죠"질문에 답하는 성석제 소설가(서울=연합뉴스) 2년 만에 신작 소설집 '믜리도 괴리도 업시' 출간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소설가 성석제(56)가 새 소설집 '믜리도 괴리도 업시'(문학동네)를 펴냈다. 장편소설 '투명인간' 이후 2년 만이다. '믜리도 괴리도 업시'란 말은 고려가요 '청산별곡'에서 따온 것이다. "살어리 살어리랏다 청산애 살어리랏다"로 시작하는 '청산별곡'에는 중간에 "어듸라 더디던 돌코/누리라 마치던 돌코/믜리도 괴리도 업시/마자셔 우니노라"라는 구절이 있다. '어디에 던지던 돌인가, 누구를 맞히려던 돌인가, 미워할 이도 사랑할 이도 없이, (그 돌에) 맞아서 울고 있노라'라는 뜻이다.작가는 왜 이번 소설집의 제목으로 이 구절을 인용했을까. "'믜리도 괴리도 업시'라는 말이 예쁘게 들리기도 했고요, 이 소설집에 담긴 작품들의 의미와 딱 부합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자신이 누구에게 해를 가한 적이 없는데도 미워하거나 사랑하는 사람 양쪽에서 돌을 맞는다는 거죠. 돌을 던지는 사람들은 돌을 맞는 사람 때문에 손해를 본 것도 없는데 약자나 소수자란 이유로 쉽게 돌을 던집니다. 마치 연못의 개구리가 돌에 맞아 죽는 것처럼요."그는 지난 11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소설집 제목을 이렇게 설명했다.표제작 '믜리도 괴리도 업시'는 동성애를 다룬 단편소설이다. 소설 속에서 '너'로 지칭되는 인물은 동성애자다. '나'와 같은 고향에서 자란 그는 어린 시절 읍내의 큰 주물공장 사장 아들로 한때 귀공자 대접을 받았지만, 공장에서 큰 사고와 화재가 잇따라 아버지 사업이 폭삭 망하면서 거지 신세로 전락하고 주변의 멸시를 받는다. 여러 고난을 극복하고 나와 같은 대학에 들어오게 된 그는 나에게 특별한 관심을 보이고, 나는 그를 무시하려 하지만 자꾸 신경이 쓰인다. 프랑스에서 유명한 미술가로 성공한 그는 몇 년 만에 동성애인과 함께 나타난다. 그가 동성애자임을 짐작했으면서도 막상 사실로 드러나자 깜짝 놀라는 나에게 그는 이렇게 쏘아붙인다. "자기가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교만한 이성애자들은 꼭 그렇게 묻더라. 언제부터 게이였느냐. 나를 어떻게 생각해온 거냐. 나를 볼 때마다 몰래 흥분한 거 아니냐. 기분 더럽다…… 내 대답은 이래. 나도 눈이 있고 수준이 있거든? 미안하지만 너희들은 내 취향이 아니냐." (본문 169쪽)작가는 이 소설 속에 등장시킨 동성애자는 소수자나 약자를 대표하는 한 표지일 뿐이라고 했다. "주류나 다수에 대응하는 개별적 존재, 소수, 차별받는 사람들을 그린 것이죠. 소설 속에서 '교만한 이성애자'로 일컬어지는 주류와 다수는 자신과 성향이 다르고 피부색이 다르고 성(性)이 다르고 빈부 차이가 있다는 이유로 돌을 던집니다. 다수 속에 숨어서 그러지요."약자와 소수자를 소설 속에 자주 등장시켜온 그는 요즘 부쩍 '난민'에 관심을 두고 있다고 했다. "시리아 같은 곳뿐만 아니라 정신적 난민도 많죠. 직업을 얻지 못하는 난민들, 불안해서 앞날이 안 보이는 그런 사람들이요. 그런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다 보니까 더 많이 눈에 띄는 것 같아요. 그들의 고통이나 애절함 그런 것에 관심이 많이 가요. 이번 소설집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풍요로운 여건에서 잘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기보다는 많은 곡절을 겪고 나락까지 떨어져 봤던 사람들이죠."이번 소설집에 담긴 '골짜기의 백합'은 특히 그런 파란만장한 사연을 지닌 여자의 이야기다. 선녀처럼 예쁜 여동생을 곱게 키우려고 화류계로 흘러든 여자는 큰돈을 벌고 자신을 끔찍이 사랑해주는 남자를 만나기도 하지만, 마약에 중독됐다가 겨우 헤어나고 일본에서 대지진과 원전 사고로 방사능에 노출된다. 그래도 그녀는 낙관을 잃지 않고 다시 삶을 모색한다.다른 소설 '매달리다'는 군사정권 시절 납북됐다 돌아온 어부가 간첩으로 몰려 삶이 완전히 파괴되는 얘기다. 이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비극적이어서 성석제 특유의 익살과 풍자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전엔 삶의 절단면이나 상처를 그대로 드러내는 게 어쩐지 좀 망설여졌어요. 그보다는 흉터나 딱지로 표현되는 게 낫지 않나 싶었죠. 그런데 지금은 그것을 다는 아니지만, 그대로 드러내는 게 더 적절하다고 생각해요. 실제 내가 목격하고 듣는 삶의 비극성이 전보다 더 강화된 것도 있고, 나 자신이 여유가 없어진 것도 있죠. 실제의 이야기를 내 스타일로 눅여서 소설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워낙 강렬하니까 눅일 여유가 없는 거죠."소설집의 맨 마지막 작품인 '나는 너다'는 이달 초 그가 한 일간지에 기고한 짧은 소설이다. 칼럼으로도 읽힐 수 있을 정도로 우리 사회의 여러 통계 지표를 인용해 이 시대를 사는 평범한 이들이 겪을 수밖에 없는 삶의 고단함을 보여준다. "사회 불평등이 점점 심화하고 있죠. 상위 1%의 힘이 점점 더 강해지고 그들의 목소리가 점점 더 커지고, 소득 집중도 통계를 보면 수치가 계속 높아지지 내려간 적이 없잖아요. 힘 있는 사람들이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제도를 그렇게 만드는 데 사용하고, 대다수 사람은 부지불식간에 소외되면서도 그걸 잘 모르고 자신의 권익을 의도치 않게 방치하게 되죠. 과거엔 이런 일이 있으면 혁명이라든지, 과격하게 뒤바꾸는 사건이 벌어졌는데, 지금은 시스템이 너무 교묘해져서 상황이 더 나빠지는 것 같아요."그는 이번 신작과 함께 첫 소설집 '내 인생의 마지막 4.5초'(1996)와 두 번째 소설집 '조동관 약전'(1997)에 담긴 작품 중 8편을 개정판으로 다듬어 '첫사랑'(문학동네)이란 제목의 소설집으로 새로 냈다. 또 그의 장편소설 '위풍당당'이 독일에서 최근 출간돼 오는 19∼28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 현지 독자들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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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따라 멋따라> 북한산 비경 간직한 '우이령길''김신조 루트' 2009년 41년 만에 개방…울창한 숲 '장관' (양주=연합뉴스) 우영식 기자 = 등산객의 발길을 부르는 가을. 주말 가족과 함께 북한산 비경에 빠져보는 것은 어떨까?북한산 자락의 우이령길은 소나무, 물푸레나무, 상수리나무 등 울창한 숲이 계곡과 어우러져 멋진 풍광을 자랑한다.서울과 가까워 언제나 가볼 수 있지만 북한산국립공원 내 탐방로 중 유일하게 탐방객 수가 제한돼 예약을 해야 한다. 우이령길 걷기대회[연합뉴스 자료사진]◇ 우마차 다니던 길 → '김신조 침투로' 41년간 통제 → 재개방 우이령길은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교현리와 서울 강북구 우이동을 잇는 지름길로 길이 6.8㎞, 폭 6m의 비포장도로다. 양주시 구간이 3.7㎞, 서울시 구간이 3.1㎞다. 6·25 전쟁 당시 미국 공병대가 작전도로로 개설한 것으로, 경기북부 주민들은 우마차를 이용해 서울로 농산물을 팔러 가거나 생필품을 사오던 길로 이용했다.1967년 10월 도로변에 석축을 쌓고 정식 도로로 개통됐지만 개통 3개월 만인 1968년 '1·21 사태' 때 김신조 등 남파간첩 31명이 청와대를 습격하기 위해 이 길을 이용했다고 해서 민간인의 출입은 통제됐다. 이 때문에 장흥지역 주민들은 20㎞가량을 우회해야 서울로 갈 수 있었다. 군부대와 전투경찰이 주둔하면서 41년간 미리 허가를 받은 석굴암 신도가 아니면 걸을 수 없는 길이 됐고,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된 덕에 북한산 비경은 훼손되지 않고 지금도 잘 보존돼 있다.반세기 가까이 일반인의 발길이 끊긴 구불구불한 산길이 다시 열린 때는 2009년 7월. 처음에는 탐방로가 아니라 열악한 경기북부의 교통여건을 해소하기 위해 도로를 다시 개통해야 한다는 움직임에서 시작됐다.이에 서울시와 양주가 도시개발의 일환으로 도로 확포장공사를 추진하기도 했고 1996년 군도 13호선으로 지정한 뒤 양주군의 시(市) 승격 이후인 2006년 시도 16호선으로 재지정했다.이 때문에 도로 재개통을 원하는 양주시와 개발에 반대하는 강북구간 갈등을 빚기도 했다. 두 지자체는 우여곡절 끝에 생태탐방로 개방에 합의, 걷기대회를 열면서 41년 만인 2009년 우이령길을 열게 됐다. 우이령 탐방로 구간[연합뉴스 자료그래픽]◇ 생태환경 '우수'·석굴암서 절경 만끽 사람의 출입을 통제한 덕에 우이령길 주변은 식물, 곤충, 동물이 가장 안심하고 살 수 있는 곳으로 변했다. 샛길도 없고 면적도 넓다. 우이령 탐방로의 가장 큰 매력은 여기에 있다. 자연환경이 잘 보전돼 있다 보니 수목이 울창하다. 가을 단풍 명소 중 한 곳이다.평탄한 길이 쭉 이어져 있어 산책하기도 쉽다. 석굴암을 들르지 않으면 1시간 30분∼2시간이면 큰 어려움 없이 탐방을 끝낼 수 있다. 탐방로를 걷다 보면 다섯 봉우리가 위엄을 자랑하는 오봉의 모습이 탐방객의 시선을 끈다. 오봉 바로 아래에는 석굴암이라는 사찰이 있어 한 번 둘러볼 만하다. 석굴암은 탐방로에서는 700여m 거리에 있다. 차가 다닐 수 있는 넓은 길이지만 경사가 심해 들러보려면 족히 1시간은 걸린다.석굴암은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가 창건했다는 설, 도선국사가 창건했다는 설, 고려 나옹화상이 3년간 수행했다는 설 등 다양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예전의 석굴암은 6·25 때 소실됐고 현재는 그 후 중건한 사찰이다.옛 고승들의 이야기가 전해지듯 석굴암에서 바라보는 북한산, 도봉산, 오봉산의 산세는 뛰어나다.자연 간직한 우이령길[연합뉴스 자료사진]◇ 하루 1천 명 만 탐방 허용 민간인의 출입이 허용된 지 7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하루탐방객 수는 1천 명으로 제한된다. 양주 교현리 코스에서 500명, 우이동 코스에서 500명이다.미리 국립공원관리공단 에코투어 누리집(http://ecotour.knps.or.kr)으로 예약을 한 뒤 오전 9시∼오후 2시에만 입산할 수 있고 오후 4시까지는 모두 하산해야 한다. 41년간 잘 보전된 생태환경을 훼손하지 않기 위한 조치다.군부대 초소도 그대로 운영돼, 양쪽 탐방로 입구에 주간에는 국립공원관리공단 직원이 근무하고 그 외 시간은 초병이 경계근무를 선다. 정상에 있던 경찰 초소도 그대로 있다. 현재 정상에는 쉼터와 문화공연을 할 수 있는 무대도 갖추고 있다. 국립공원관리공단 교현탐방지원센터 관계자는 "우이령 탐방로는 북한산 중에서도 경치가 좋고 생태가 잘 보전된 곳 중 하나"라며 "어린이나 노인도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어 주말 나들이 삼아 둘러볼 만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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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중의 접목 노현숙 한의사조선족 출신 한의사 1호, "중국 임상경험이 진료에 도움"침술의 대가로 환자 차트 6만개…"보약보다 치료에 집중"안산시 우수납세자…소득 질문엔 "연간 세금 1억원 납부" (서울=연합뉴스) 강성철 기자 = 경기도 안산시에 척추·관절·불임·소아과 진료로 명성을 날리는 조선족 한의사가 있다. 전국에서 환자들이 몰린다는 노현숙한의원의 원장인 노현숙(50) 씨가 그 주인공. 조선족 출신으로는 국내 한의사 자격을 처음으로 취득한 인물이다. 기자가 찾아간 6일은 토요일인데도 환자로 북적거렸다. 한의원에 있을 때는 환자에만 집중하려고 휴대폰도 꺼놓고 일절 다른 일을 하지 않는다기에 진료 업무가 끝나기를 기다려 인터뷰를 진행했다. 첫 번째 질문으로 하루에 진료하는 환자가 몇 명이냐를 택했다. 환자 숫자로 명성을 가늠해볼 요량이었다. "평균 150여 명이 찾아옵니다. 부원장과 둘이서 온종일 진료와 치료를 병행하니까 쉴 틈이 없어요. 2003년 개원해서 지금까지 축적한 환자 차트가 6만 개에 이릅니다." 노 원장은 "환자 중에 조선족이나 한족은 15%가 안 되며, 나머지 대부분은 치료를 받았던 조선족의 소개나 입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한국사람"이라고 했다. 조선족 3세로 중국 헤이룽장(黑龍江)성 아청(阿城)시 해동촌 출신인 노 원장은 "중학교 2학년 때 유행성출혈열로 아버지를 잃고서 병을 고치는 의사가 결심했다"며 꿈을 이루기 위해 도전했던 지난 시절을 들려줬다. 어릴 적 살던 해동촌은 전기도 잘 안 들어오던 깡촌으로 고등학교를 진학하는 학생조차 별로 없던 마을이다. 그런 곳에서 대학 진학을 꿈꾸기는 쉽지 않았지만 그는 악착같이 공부에 매달렸다. 덕분에 줄곧 우등을 놓치지 않았고 1985년 하얼빈 중의대에 합격했다. "동네에서 잔치가 벌어졌죠. 처음 대학 합격자가 나왔는데 그것도 시 단위에서 한 명 정도 뽑는 의대생이 됐다고 모두 자기 일처럼 기뻐해 주었습니다. 당시나 지금이나 중국에서 의사는 굉장히 존경받는 직업이거든요." 노 원장은 중국 전통의학인 중의과 졸업 후 아성 시립병원에서 5년간 의사로 근무했다. 아청시 소수민족위원으로도 활동하며 조선족 돕기에도 앞장섰던 그는 1996년 한국인 남편을 만나 한국으로 이주했다. 중국에서 남부러울 것 없는 의사로 살다가 기득권을 버리고 한국에 온 이유를 그는 "고향인 경상남도 함양군 유림면 국계리를 잊지 말고 꼭 찾아가 보라던 선친의 당부 때문"이라고 털어놨다. "일제 강점기에 조부모와 함께 만주로 이주한 선친은 늘 고향을 그리워하셨죠. 언젠가는 돌아가겠다는 마음이어서 경상도 말과 생활습관을 지키고 사셨어요. 그래서 1990년 의사로 발령을 받자마자 족보를 들고 선친의 고향을 찾았습니다. 조부모가 살던 집도 그대로 남아있었고 친척분들도 만났죠. 어찌나 반겨주시던지 3개월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그때 고국의 따스함과 고향의 정을 흠뻑 느꼈기에 남편을 만났을 때 한국행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중국에서 취득한 소아전문의 겸 침구의사 자격이 한국에서 소용없다는 것을 알고는 서른 살에 늦깎이 공부를 시작했다. 1997년 연세대 의대와 세명대 한의대에 동시 합격했는데 경험도 살리고 고국의 한의학도 배워보고 싶어 세명대를 선택했다. 한국에서의 대학 생활이 쉽지는 않았다. 전공 위주로 가르치는 중국과 달리 교양도 익혀야 했고 교육환경도 달랐다. 띠동갑인 어린 학생들과의 경쟁도 만만치 않았기에 공부에만 매달렸다. "6년간 수업 외에 유일하게 참여한 학과 행사가 졸업여행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중국에서 온 간첩 아니냐는 의심도 받았죠(웃음). 동기들에게 중국어와 한자를 가르치면서 친해졌고 교수님도 중국에서 의사로 지낸 경력을 존중해주어서 힘이 됐습니다." 2003년 졸업과 동시에 한의사 국가고시에 합격한 그는 남편의 고향인 안산에 한의원을 개원했고, 공부도 계속 이어가서 2008년에는 세명대에서 한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노 원장은 "병원 문을 연 이래로 가장 신경 쓴 것이 환자에게 신뢰를 받는 것"이라며 "마음가짐도 중요하지만 실력이 우선이란 생각에 공부를 계속했고 지금도 학회 세미나 등에 꾸준히 참가하고 있다"고 했다. 한의원이 돈을 버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 보약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그의 병원에는 치료를 위해 찾는 환자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다 보니 노 원장은 약 제조를 위해 밤늦게까지 약재실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한의사들이 모여 침술을 연구하는 도침학회의 회장이기도 한 그는 침을 잘 놓는 한의사로도 유명하다. 환자의 90%가 침 맞으러 올 정도란다. 그가 사용하는 침술은 체침·평형침·섬유침·도침·약침 등 5가지다. "침을 놓는 방법은 20여 가지가 넘습니다. 각각의 장단점이 있죠. 도침학회에서는 한 달에 한 번씩 한의사들이 모여 침술에 대한 경험과 의견을 나눕니다. 환자의 상태와 체질에 따라 침술을 달리할 필요도 있거든요." 그는 대한여한의사회와 경기도한의사협회 이사로 국내와 해외 의료 봉사활동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안산시한의사협회 부회장으로 10년간 지역에서 다문화가정과 경로당 등을 찾아다니며 무료 진료 봉사를 펼치기도 했다. 한의원을 찾는 환자 중에 형편이 어려운 이에게는 치료비를 덜 받기도 한다. 중국에서 의사로 재직할 때 환자의 재정을 고려해 치료해 본 적이 없었기에 자연스럽게 '사람이 먼저'란 생각이 배어 있어서다. "침놓는 값을 아예 저렴하게 받았더니 다른 한의원에서 고발이 들어오더라고요. 선의로 하는 일이라도 업계가 정한 룰을 지키는 게 더불어 사는 길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요즘에는 할인제도를 도입해서 환자 부담을 줄여드리고 있습니다." 노현숙 원장이 건강을 위한 생활속 실천법인 양생법(養生法) 전문가를 초청해 환자들에게 자기 몸 관리법을 전하고 있다. 그는 중국에서 의사로 활동했던 인맥을 활용해 중의 전문의를 자비로 초청해 한의사를 대상으로 강연회를 종종 열고 있다. 중의학과 한의학 간 교류가 의술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는 생각에서다. "중국은 전통의학에 대한 투자가 한국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적극적입니다. 국립중의과학원의 연구원이 4천700여 명인 데다 중의 병원만도 3천600여 개 있어서 연구와 임상이 자연스럽게 이뤄지고 있죠. 과거처럼 무시하지 말고 중국의 앞선 부분은 우리도 받아들여야 합니다. 한의학이 발전할수록 그 혜택은 국민이 누리는거니까요." 한국에서 한의사로 활동하는데 제일 어려운 점을 묻자 그는 "중국과 달리 환자에만 집중하지 못하고 경영도 해야 하는 일"이라고 대답했다. 그의 한의원에는 본인을 포함해 부원장과 간호사 8명 등 10명이 근무하고 있다. 노 원장은 "급여를 주고 약재를 사들이고 수시로 인테리어를 손보는 등 할 일이 많지만 책임감도 느껴지고 그만큼 보람도 크다"며 활짝 웃었다. 모든 것을 투명하게 운영한다는 노 원장은 지난해 안산세무서 명예 민원봉사실장에 위촉됐고 지난 3월에는 안산시 우수납세자로 선정돼 표창을 받기도 했다. 본인 몫으로 가져가는 수익이 얼마냐는 질문에 그는 "소득세 등 납부하는 세금이 연간 1억 원 정도"라는 말로 답변을 대신했다. 은퇴할 때까지 10만 명 이상 환자를 돌볼 계획이라는 노 원장은 자신을 받아준 한국에 조금이라도 기여를 하려고 지난해부터 체질에 따른 침법을 알리는 책을 쓰고 있다. 노 원장은 이 책에서 한중 양국에서 의술을 펼치며 쌓은 경험뿐만 아니라 중국 침술의 최신 동향도 소개할 작정이다. "인생의 전반기 30년은 중국에서 보냈고 한국생활도 20년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양국에서 의사로 살면서 존중받고 보람되게 살 수 있는 축복을 누리고 있으니 보답하는 건 당연한 일이죠. 앞으로는 중의학을 한국에 소개하고 서로 교류하는 데 미력하나마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